

콘텐츠 초안은 AI가 10분 만에 뽑아줍니다. 캠페인 리포트도, 타겟 오디언스 분석도, 이미지 시안도 예전 같으면 며칠 걸리던 일이 이제 몇 분이면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은 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더 길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신 적 있으신가요.이건 착각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조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AI가 마케팅 실행 속도를 체감상 20배쯤 끌어올렸다는 말,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실행이 20배 빨라진 만큼, 성과도 20배 좋아졌을까요.
올해 7월 MIT의 연구 이니셔티브 NANDA가 발표한 「The GenAI Divide: State of AI in Business 2025」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도입한 기업 파일럿의 약 95%가 실질적인 손익(P&L) 개선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경우는 5%에 불과했습니다.
맥킨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The State of AI」 글로벌 서베이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조사에 참여한 조직의 88%가 최소 한 개 이상의 업무에 AI를 정기적으로 쓰고 있다고 답했지만, 그중 실제 EBIT(영업이익) 개선을 체감한다고 답한 비율은 39%에 그쳤습니다. 도입률과 성과 체감 사이에 거의 50%p 가까운 간극이 있는 셈입니다.
마케팅 조직만 놓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트너의 2026년 CMO Spend Survey에 따르면 CMO들은 마케팅 예산의 15.3%를 이미 AI에 쓰고 있지만, 그 역량을 실제로 확장할 준비가 됐다고 답한 비율은 30%뿐이었습니다. 또 다른 가트너 조사(2025)에서는 마테크 리더의 45%가 "벤더가 약속한 만큼의 성과를 AI 에이전트가 내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I를 쓰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 됐지만, 그게 성과로 이어지는 건 전혀 당연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원인은 AI가 "무엇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AI가 "무엇을 없앴느냐"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시간, 비용, 리스크라는 제약이 자연스러운 필터 역할을 했습니다. 콘텐츠 하나를 만드는 데 2주가 걸린다면, 시작하기 전에 "이게 정말 필요한 콘텐츠인가"를 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캠페인 하나를 기획하는 데 팀 전체의 일주일이 든다면, 자연스럽게 우선순위를 가려내야 했습니다. 제약이 많은 일을 걸러줬던 겁니다.
그런데 AI는 이 제약들을 하나씩 지워버렸습니다. 콘텐츠는 몇 분이면 여러 버전이 나오고, 캠페인 시안도 하루 안에 열 개씩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약이 사라진 자리를 아무것도 대신 채워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예전엔 "제약"이 필터였다면, 이제 그 필터를 마케터가 직접 머릿속에서 만들어야 합니다.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다 만들면, 실행량만 늘어날 뿐 방향은 오히려 흐려집니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저서 《선택의 심리학(The Paradox of Choice)》에서, 선택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결정의 질이 떨어지고 불안감만 커진다고 말합니다. AI가 만들어낸 "할 수 있는 일의 목록"이 길어질수록, 그중 무엇이 진짜 성과로 이어질지 고르는 일은 더 어려워집니다. 실행이 쉬워졌다고 판단까지 쉬워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칼 뉴포트는 《슬로우 프로덕티비티》에서 바쁨(pseudo-productivity)과 진짜 성과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렉 맥커운은 《에센셜리즘》에서 "내가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누군가 대신 정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두 책 모두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원이 풍부해질수록, 무엇을 고를지 아는 능력이 오히려 희소해진다는 것입니다.
마케팅도 다르지 않습니다. AI가 실행의 한계를 낮춘 지금, 마케터를 가르는 기준은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중 무엇을 실제로 밀어붙이고, 무엇을 하지 않기로 하느냐"입니다. 하지 않는 결정이, 하는 결정만큼 중요해진 겁니다.
그런데 그 판단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엔 정답이 없습니다. 회사마다, 브랜드마다, 상황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이 판단을 매일 실전에서 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이 글에서 다룬 질문 — AI 시대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 에 대해, 저희 아드리엘은 이론이 아니라 실전에서 이 판단을 직접 해온 브랜드 리더와 AI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